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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 조 종, 군, 대군, 공주, 옹주, 대원군, 부원군

조선왕실 호칭 정리

조선은 모두 27명의 왕이 있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조선왕의 호칭은 모두 묘호라고 해서 사후에 붙여지는 이름이다. 철종 하면 생전에는 철종이라고 부르지는 않았다.

임금의 이름은 생전에도 아무나 부르지 못했다. 일반 백성이 임금과 같은 이름을 사용할 수 없어서 임금은 일반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이름을 썼다. 그것도 외자로 사용했다.

조선왕 조 종,군,대군

조선에는 모두 27명의 왕이 있었다. 그중에서 2명은 "군"을 묘호로 사용하였고 7명은 "조"를 묘호로 사용하였고 나머지 18명이 "종"을 묘호로 사용했다.

 

하지만 마지막 26대 고종과 27대 순종은 황제의 나라(대한제국)여서 묘호를 "고종황제"와 "순종황제"로 사용하였기 때문에 16명이 "종"의 묘호를 사용한 것이다.

 

연산군과 광해군은 모두 반정에 의해 왕위에서 물러났기 때문에 묘호에 왕을 상징하는 조나 종을 사용하지 못했다. 묘호는 보통 임금이 승하하고 나서 다음 임금과 신하들이 정했다.

 

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다음 왕이 이전 왕을 왕으로 여기면 반정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다 연산군과 광해군은 모두 군으로 묘호가 정해졌다.

 

단종 또한 노산군으로 불리다가 숙종 때 단종으로 추존되었다. 단종처럼 사후 오랜 시간이 흘러서 묘호가 추존된 왕은 2대 정종이다.

 

정종은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아들이지만 조선 건국에 공로가 거의 없었다. 보통 국가를 건국한 왕을 태조라고 묘호를 정하고 그다음 국가의 기틀을 마련한 왕을 태종이라고 한다.

 

한 왕조에서 태(太) 자가 들어가는 왕은 2명이다. 그래서 정종이 죽었을 때 왕이 세종이었는데 세종은 자신의 아버지인 태종 이방원을 태종이라는 묘호로 하고 싶어 정종의 묘호를 정하지 않았다.

 

정종은 사후 260년이라는 세월이 흐르고 나서 숙종 때 묘호를 받았다. 그전에는 "공정 대왕"이라고 불렸다. 정종이 묘호를 받지 못했다면 우리는 조선왕조 순서를 태정태세문단세로 하지 못하고 태공 태세 문단세로 했을 것이다.

 

원래 조는 국가를 세우거나 공이 있는 임금을 조라고 묘호를 붙였다. 태조, 세조, 선조, 인조, 영조, 정조, 순조 등 7명이다. 하지만 이 원칙이 그대로 지켜지지는 않았다.

 

종의 묘호는 부자간 승계로 왕이 된 임금 세자가 왕위를 계승한 임금 그리고 덕이 있는 임금을 뜻하는 것이 었지만 정확한 원칙으로 묘호를 정하지는 않았다.

종의 묘호를 가진 임금은 정종, 태종, 세종, 문종, 단종, 예종, 성종, 중종, 인종, 명종, 효종, 현종, 숙종, 경종, 헌종, 철종 등 16명이고 고종과 순종은 제외했다.

 

조선시대 최대 기록물인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세종실록처럼 묘호를 사용해서 실록을 편찬했는데 연산군과 광해군은 일기라는 이름으로 실록을 편찬했다. 광해군일기, 연산군일기.

 

묘호에 조와 종을 붙이는 것은 중국 왕조에 따라서 했는데, 형식적으로는 조선왕은 중국 황제의 신하이기 때문에 묘호를 사용할 수 없었다. 그러나 조선은 그것을 무시하고 묘호를 사용했다.

 

한번 결정된 묘호는 중간에 바뀌기도 했는데 대표적인 왕이 선조이다. 선조의 경우 처음에는 선종이었다가 나중에 선조로 변경되었고 인조 또한 인종에서 인조로 묘호가 바뀌었다.

 

왕의 아들인 왕자를 표현하는 호칭도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정실 왕비에서 태어난 왕자는 "대군"이라고 부르고 후궁에서 태어난 왕자는 "군"이라고 부른다.

 

공주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정실왕비 출생이면 "공주" 후궁의 출생이면 "옹주"라고 불리면서 출생 성분에 따라 호칭을 달리하면서 차별하였다.

 

왕의 아버지를 "대원군"이라고 했다. 모두 대원군이라고 불리는 게 아니고 왕이 아닌 사람의 자식이 왕이 되면 그 아버지를 대원군이라고 호칭했다.

 

대원 군중에 유명한 사람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고종의 아버지 흥선대원군이다. 요즘 유행하는 드라마 철인왕후에 나오는 철종의 아버지는 전계대원군이다.

 

두 사람은 모두 왕과는 거리가 아주 멀었지만 당시 집권세력인 세도가들에 의해서 왕이 결정되면서 자식들이 왕위에 오른 대표적인 케이스다. 살아있는 왕의 아버지였다.

 

임금의 장인 즉 왕비의 아버지는 "부원군"이라는 호칭을 받았다. 대원군과는 다르게 부원군은 당시 권력의 정점에 있었다. 많은 부원군들이 조선왕의 핵심 신하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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